♪ 빠다와 월드컵 그리고 골목길... ♬
나라와 온국민이 축제분위기였던 2002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지독한 고비가 찾아왔던 때가 바로 이 때다. 본업을 벗어나 잠깐 외도를 했던, 새로 시작했던 일이 한 2년간 잘 안풀리면서 가진 것을 몽땅 다 날리다시피 하고, 그해 한겨울 흰 함박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날... 약 8개월가량의 임시 거처로서 날림으로 지어진 듯한 곧 철거예정인 이층판자집으로 우린 이사하게 되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겨우 두 사람만이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는 넓이의 골목, 집 현관문을 열면 벽이 코앞에 바로 닿는 그 좁은 골목길에는 언제나 안개가 가득 차있는 것처럼 흐릿한 풍경으로 당시에도 나는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어떤 누군가의 한장의 그림처럼 느껴졌었다. 또 그 골목길에는 낮은 노란 가로등이 비좁은 길따라 다닥다닥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무심하게들 서있었고, 인적은 드물게 있어서 늘 침묵하는 길이 때론 어떤 말없는 사내가 문밖에 서있는 것처럼 나는 그 그림자를 느꼈다.
만약 내 생활이 아닌 것으로 보면... 특히 비오는 날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빗소리에 넋을 놓을만큼 이색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이라고 나는 생각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집의 벽이며 지붕이며 대개의 모든 것들이 얇아서 거기에 부딪히는 것들에서 마치 유리잔에 부딪치듯 공명하는 맑은 소리가 났고, 옆집의 TV소리도 그대로 투과되는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가로막힌 것이 없는 투명한 벌거벗은 집이었다. 다락처럼 생긴 이층의 작은 베란다는 각목으로 창을 해놓고 유리대신 얇은 비닐이 쳐 있었다. 햇빛이 비치는 날에는 아주 밝아서 나는 이곳에 있는 걸 좋아했고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그날의 기분과 맞는 음악을 들으며 창밖 지붕 위로 드러난 푸른 하늘을 보았었다. 또 종일 비오는 날엔 다른 데로 가고싶지 않을만큼 투다투닥 플라스틱처마와 비닐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뻤고 또 그 소리에 빨려들어가다보면 그 집이 마치 산 위로 불쑥 솟아오른 것처럼 독립적으로 느껴져서 작은 라디오 속으로 들어간 듯 현실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상황이 애처로왔으니 아마도 내 생각엔 그때의 빗소리는 마치 영화음악처럼 그 집의 배경이 되어 더 아름답고 깊게 들리지 않았을까...
그해 4월말경 우리는 친한 동생이 키우던 미니핀 '고동이'가 낳은 둘째여아 '빠다'를 드디어 우리 딸로 입양했다. 최소 45일후에 데려가라 했는데 나의 고집으로 손바닥만한 강아지를 40일만에 데려와서 혹시라도 죽을까봐 우린 서로 무척 애지중지 했었다. 그때 있었던 일... 이 골목길의 집들은 대개가 화장실이 집에 없었고 동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공터의 큰 공중화장실을 모두 함께 사용했다. 또 당시 우리방에는 방문이 없었다. 원래는 방문이 있었지만 이사올때 짐이 들어오지 못해서 내가 과감히 문과 벽을 부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투명한 비닐로 막고 문처럼 임시방편으로 오려내 들락날락하기 쉽게 해두었었다. 나중에 곧 철거될 집이므로 되는대로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출장갔다가 돌아왔더니 평소 조용한 싸비가 실실 웃는 거였다.
내가 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싸비는 곧 내게 "아, 글쎄 오늘 좀 웃긴 일이 있었어."
나는 "뭔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이 가고나서 난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싶어졌어. 그런데 빠다를 혼자 두고 가야 하잖아. 문도 없는데... 비닐 밖으로 기어나와 더러운 바닥에서 뭘 줏어 먹을 수도 있으니,,, 어떻게 하지?하며 그 순간 무척 고심했어."
나는 "그러게... 그게 문제지. 근데 어떻게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지. 내가 빠다를 세탁기통 속에 쏙 넣어놓고, 금방 다녀올께. 너 여기 좀 있어 말하고 막 숨차게 뛰어갔다 왔어. 근데 얘가 기특하게도 갔다올때까지 이 안에서 조용하게 있는거야. 아 어쩜... 얘가 벌써부터 날 믿는걸까? 아님 내가 너무 쏜살같아서 기다릴 새가 없었는지...ㅎㅎ 암튼 기특하고 너무 귀여워..."
월드컵이 열리던 그해 여름...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순식간에 다 젖을만큼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열 받는 지붕아래서 우리 말고도 여러 집들이 살았다. 우린 식구가 적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른 식구 많은 집들은 그 여름이 얼마나 더웠을까... 하지만 우린 빠다의 막 자라는 귀여운 모습에 빠지고, 한 여름동안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한민국을 외치며 밤마다 걷기를 하고 경기장에 온 정신을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빠다와 월드컵 없이 그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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