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days

달, 첫사랑을 만난 빠다

sav.. 2008. 11. 13. 20:05

음력 10월14일, 하루만 더 있으면 보름달이 되는데... 영월 흙집에 뜨는 달



강원도 영월 흙집에 뜨는 달, 보름이 되려면 하루를 남겨두긴 했지만 구름한점 없는 밤하늘에 달이 유난히 밝았다. 주변의 별들은, 달이 너무 밝은 탓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왼쪽 산위로 유난히 큰별들인 북두칠성만 가깝고 또렷하게 빛났다. 나는 삼각대를 집에 두고 온탓으로 별을 찍을 수는 없었고, 고배율의 망원렌즈는 없지만 105mm로 최대한 당겨 고화질로 달을 찍어서 잘라내니 겨우 볼만하게는 된 것 같다.

우리가 머물렀던 흙집 옆에, 또 한채의 새로 짓는 좀 더 큰 팔각흙집에는 아직 비어있는 창으로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흘러나와 멀리 은하수가 될 것처럼 끝없이 밤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고, 새로 만들어진 구들은 이제 제모습을 확실히 갖추기 위해 시동을 걸어보듯.. 빨간 알불 속에 마른 장작들만이 활활 지펴지고 있었다.

다시한번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겸연적게 장작불빛에 그을린듯 검붉은빛 얼굴로 이제 세번째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웃었고, 새 아궁이 속의 숯불 위에 동네분들이 어제 잡았다던 흑돼지의 갈비가 삽 위에서 익어가는 동안 산적님과 나는 소주를, 싸비와 들꽃님은 맥주를 한마디 인사와 함께 한 잔씩 주고 받았다. 그들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짱구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그간의 코난이야기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코난이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너무 어린 녀석이라 짱구와 헤어진후 그만 애가 타서 죽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이 마을의 이방인에 불과했었지만, 코난의 죽음과 며칠간의 수색을 과정을 통해 자신들도 모르게 그동안 사람들과의 사이에 작은 온정이 지펴지고 있었다는 것을 코난 때문에 깨닫게 되어 생각할 수록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사건 속에서 대다수 마을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준 것과 또 그 중 일부의 마을친구들이 그들과 함께 울어준 마음에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깊이 받은 것 같았다.

밤하늘 달과 별이 밝은 것처럼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더욱 밝아지길 소망하며 가벼운 술한잔과 소박한 담화를 끝내고 우린 다시 흙집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불뺀지 오래인데도 역시 전과 같이 천천히 뜨거워지며 온몸이 시원해졌다. 두툼한 흙바닥이 이처럼 좋은 것에, 그리고 구들이 이런 매력이 있다는 것을 여태 몰랐던 내가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잠이 오질 않았다. 통유리 창밖에 별이 그대로 들어와 빛나고 있어서 그런걸까. 누워서 하늘과 바로 맞닿을 수 있다니... 이곳은 하늘과 별과 우주가 현실이 되는 매력적인 곳이다.

아직 자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달아래 마을은 모두가 잠들었다. 고요한 세상. 오래오래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과 달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들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엿듣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밤에 보는 여러 겹의 검은 산들이 이렇게 무섭지 않다니... 강원도인데도 아직 그다지 춥지도 않아서 나는 밤새 바라보는 것들을 그치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전기톱과는 좀 다른 톱날에 체인이 감겨져 있는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톱 사용하는 것을 가르쳐주는대로 한번 따라 해보았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위험부담이 큰 공구라 긴장을 한시도 풀지 않으며 온신경을 곤두세워 일단 잘 해냈고... 오히려 보다 쉽지 않았던 것이 장작패는 것이었다. 쇠도끼로 통나무의 가운데를 찍어 쪼개는 것인데 생전 처음이라 헛단데를 찍기도 하고 이때 어설픈 도끼질에 우스운 몸짓으로 스스로 얼굴이 시뻘개진 내 모습에 주변에서 유쾌히 웃어댔고, 난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이렇게 마음속으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며 또한번 내려 찍었지만 옹이가 있는 나무는 정말 쉽게 쪼개지지 않았다. 하지만 뭐든지 몇번 해보면 저절로 요령을 알게 되는 법이니, 역시 몇번을 더 해볼 수록 힘보다는 요령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도끼를 잘 떨어뜨릴 수록 "쩍, 뻑!" 이라는 명쾌한 소리가 나면서 멋지게 두조각 세조각으로 나뉘었다. 유치하지만 주변의 박수갈채에 부응하듯 "쩍!" 소리를 더 자주 내주며 나는 '부들부들' 더 힘을 냈다. 막 머슴의 근육이 어깨와 팔뚝에 생기는 것만 같았다. ㅎㅎㅎ

두꺼운 옷도 벗어버리고 흐르는 땀에 벌이 가끔 날아든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 사이 우리빠다는 짱구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 여태 만난 강아지나 개들중에 빠다가 관심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나와 싸비는 너무 반가웠다. 빠다가 갑자기 집에서 늘 배워온 '사랑해요' 라는 모션을 짱구에게 취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짱구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런, 어쩌나! 우리 빠다가 거절당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랑해요'라는 동작은 두팔을 목에 감고 얼굴을 대는 것인데 빠다가 짱구의 목에 두팔을 얹고 그를 은근히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의 목에 두팔을 올렸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자 "응으응으흐~" 뭐라 소리를 내면서 싸비에게 그만 초라한 얼굴로 돌아온다.  ㅎㅎㅎ 짱구에게 또 퇴짜를 맞은 우리빠다!

들꽃님은 짱구가 동네 암컷들에게 인기가 좋다며 얼마전에도 빠다만한 강아지가 하루를 옆에서 그냥 자고 갔다고 한다. 물론 서로 좋아해도 몸 크기가 안맞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기특하기도 해라! 저와 몸크기가 다르다고 그냥 옆에 두고만 보다니... 문득 어떤 파렴치한 사람들의 어린아이 성추행사건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에서 나왔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들이야말로 개만도 못한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빠다는 생후 7년만에 마침내 첫사랑을 만났고 그에게 과감히 먼저 사랑을 고백했다. 물론 이번엔 거절을 당했지만 계속 보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음 있는대로 관심을 그대로 표현한 빠다가 정말 사랑스럽다. 평상시 다른 개들에겐 제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는 도도한 빠다의 얼굴이 짱구의 참혹한 거절에 잠시나마 꾀재재하고 초라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짱구에게 "짱구야, 다음 번에는 우리빠다를 조금만 더 이뻐해줘!" 당부를 살짝하고 손을 흔들며 어느새 영월 흙집을 우린 다시 떠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자고 일어났을때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팔뚝과 허리에 알이 배고 특히 허리는 담이 들린 것처럼 잘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도끼를 잡았던 왼손바닥에는 벌써 한군데 슬쩍 물집이 하얗게 잡혔다. 그들이 산에서 처음 흙집을 지을 때 익숙치 않은 몸 때문에 상상보다 훨씬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함께 집을 짓는다는 힘든 과정 속에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열심히 지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 몸은 피곤하지만 도시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대화와 꼭 필요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면서 일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이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해준 것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해본다.

다 가진 사람은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으니, 어쩌면 행복해지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다 젊었을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 세상을 들여다볼 수록 물질적 풍요를 가진 사람은 많아도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더 드물다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혹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면, 글쎄... 무엇일까?....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까...

 ...s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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