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er

그녀와의 인연

sav.. 2005. 5. 28. 01:44

한 십육년쯤 되었을까...그녀와의 인연이...                                          sav..
 


대학에 복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학교 앞 어느 미용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보게 되었다. 일하는 여자들이 세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 마르고 약간 냉정하게 생긴 그녀는 그 날 내 머리를 자르게 되면서 지금까지 16년의 인연을 맺게 된다. 물론 그 날 자른 머리가 마음에 들었으므로....

내 얼굴은 네모나서 남들처럼 머리를 깎으면 정말 안 어울린다. 까다롭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가 없었는데, 그녀만은 내 머리를 어떻게 해야 잘 어울리는지 알고 있는듯 했다. 어느 날인가 한번은 내가 "땡기는대로 미친듯이 깎아 줘요." 그랬더니 그녀는 막 웃으며 신나게 미친듯이 가위 질을 하다가 자기 손에 피가 나는 상처를 입은 때도 있었다. 물론 그 날의 머리는 생각외로 너무 멋진 작품이 되었고... 더 큰 신뢰도 생겨났다. 그 후로부터 난 매달 그녀를 보게 된다. 한달에 한번은 어김없이 나의 머리가 자라기에... 친구보다도 어쩌면 더 자주 볼 수밖에 없는 그녀...

그 후 8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가보니 그 자리에 다른 미용실이 들어와 있었다. 기웃거리다 혹시나 하고 옆 튀김집 할머니에게 "이사갔나요?  그 미스Kim 이라는 분 어디로 가셨는지 아시나요?" 다행히도 그분에게서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우연인지 놀랍게도 그녀가 우리동네로 이사 갔다고 했다. 그리고 차로 10분거리에 미용실을 개업했다는 말을 듣게되고 다시 인연은 이어지게 된다.

난 그 후로도 방배동부터 한남동, 미아동, 고양시 그리고 지금 사는 곳까지...아무리 멀어도 그녀를 찾아가 머리를 맡긴다. 그 때 그 할머니에게 내가 묻지 않았다면 그녀와의 인연은 아마도 거기서 끝이었을텐네...

     지금 그녀는 휴식중 

지난 번에 그녀를 보았을때, 난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슬펐다. 한참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정도의 일이 생겼다.

늘 어딘지 외로운 그림자가 그녀에겐 있었다. 그녀는 수년전에 가족이 없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는 낳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만날 때마다 속썩이는 남편에 대한 말을 듣곤 했다. 그러던 그녀는 불행히도 최근 이혼을 하게 되었고, 좀 쌀쌀맞고 약간 틱틱 거리는... 사실 태도불량이라면 불량인. 그런데 밉지않고 왠지 자꾸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사람으로 부터 받은 상처가 커서 또다시 상처받기 두려워 미리 방어선을 두껍게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까다롭게 내 스타일을 고집하며 요구해도, 조금 툴툴거리긴 하지만 내가 오케이 할때까지 맘에 들게 해주는... 이제는 알아서 척척 하지만.

이렇듯 10년이 넘도록 그녀를 매달 보다보니 이젠 아주 친근한 사이가 되고, 이혼한 후 얼마 안되어서 그녀의 생일에 처음으로 초대를 받는다. 그녀는 혼자서 보낼 생일이 걱정되었던 것 같았다. 물론 그날은 아주 재밌게 보냈다. 한강을 드라이브하고... 이 때 그녀는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야, 다리 야경 정말 멋지다! 어, 저 다린 뭐야? 많이 달라졌네" 또 한강 선유도를 밤늦게까지 걸어 다녔다. 그녀는 한강변을 본지가 10년만이라고 했다. 코 앞에 한강을 두고도 말이다.


     조울증
 

언젠가 그녀를 안지 한 4년 정도 지나 그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주인 여자와 반갑게 인사하고 "어디 계시죠?" 물었을 때 난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어느 병원이요?" 모른다고 했다. 그날 주인 여자는 내 머리를 눈치보며 깎았고, 왜냐하면 난 그녀가 깎아주길 늘 고집했던터라... 난 대충 마음에 드는척 나왔지만... 역시 대충 마음에 드는지라.

한달 뒤 다시 갔을때 그녀는 여느 때처럼 거기 나와 있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내 머리를 자르면서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말을 내게 슬며시 내민다. 이 때다 싶어 조심스럽게 "무슨 병인데요?" 했더니 조울증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야기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일이 최근 내 눈 앞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최근 한달 전에 그녀의 미용실을 찾았을 때 였다. 그녀는 다른 때와 달리 좀 상기된 표정으로 옆집 강아지 엄마와 싸우게 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다른 때와 달리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흥분된 상태로 말하면서 내 머리들 한번에 싹둑싹둑 팍팍 자르는 거였다. 마치 내 귀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점점 흥분되어 가고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농담삼아 눈치보며 "너무 막 자르시는거 같은데..." 이 정도 반농담은 평소엔 웃으며 넘어가는 사이였는데, 그 날은 약간 신경질을 참듯 "뭘 걱정하는데, 머리만지기만 20년이 넘었어. 막 잘라도 이 정도는 기본이야." 좀 무시무시하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녀의 솜씨는 아까웠다. 전체적인 머리의 어울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비달사순과 관련한 유학 기회를 비용문제로 놓쳤다는 말도 들은적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공감해주며 "기분전환 하실래요? 문닫고 드라이브라도 같이 가죠?  어디 가실데라도 있으신지..."

그녀는 기다렸다는듯이 조금만 기다리라며 가게를 서둘러 닫았다. 우린 그날 계획을 뒤로미루기로 했다. 그녀는 너무 좋아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제부터가 '조증'인가보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갑자기 자기가 가고 싶은 데가 있다고 해서, 차를 돌려 가다 아파트옆 아름다운 꽃이 핀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갑자기 차를 세우라는 말과 함께.. 게다가 서기도 전에 차에서 내리려하다 그만, 차문을 벽에 들이 받게 하고 말았다. 속으로  난 '으이그... !'  그러나 나는 말로 "괜찮아요? "하면서 차마 차에서 내려 문짝 확인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우리에게 담벼락 밖으로 나온 진달래와 개나리를 뜯어서, 먹으라고 우리 입까지 내밀었다. 맛있다고... 점점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었다. 나중에 보니 문끝이 얼마나 세게 그랬는지 찌그러져 있었다.


     음식점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그녀

두 번이나 차에서 내려 꽃을  따먹고... 그녀의 목적지에 우린 도착하게 되었다. 이른바 웰빙 음식점. 평상시 잘 오지도 않는 너무 비싼 음식점이었다. 자긴 자주 온다나... 어쨌든 그녀는 먼저 꽃 술을시키고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하고 우리에게 고르라고 했다. 우린 우리가 계산할 게 아니라서 그 중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고르고...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계속 얼음 물을 찾고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옆에 갖다 놨는데도 또 가져오라하고, 쉴새없이 종업원을 부르고, 옆의 어항속 금붕어를 손으로 잡느라 물을 튀기고, 그녀는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술을 이미 여러 잔 마시고 있었고, 술이 약한 것 같았다. 어쨌든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길 나눴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하고... 그 눈속에 보이는 그녀의 외로움에 나는 가슴에 돌덩이를 달아놓은 느낌이 들었다.

싸비는 그녀를 마주한 채 눈 속이 빨개 지고... 그러던 중 그녀가 갑자기 하나님 말을 꺼내며, 자기 주장을 하고 난후 소감을 우리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가 별로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라 솔직히 그런 생각 안든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안색과 눈동자가 이상해지더니 자기는 하나님이 어느 곳에서든 보인다는 말을 하는 거였다. 달 속에도 컵 속에도 계신다는... 쉬지 않고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식당 전체가 떠나가듯... 이어서 나에게까지 화를 내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고 내 밷는 것이었다.

그녀의 평상시 같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까지. 신들린 무당의 눈빛이 그랬을까, 혹은 완전히 악마의 모습과 같이... 난 내 얼굴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정도로 당황했고, 옆의 싸비는 속으로 화난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이상하게도 아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얼마후에 옆으로 쪽지가 전해졌다. 식당주인으로 부터 빨리 나가 달라는 메세지가 온 것이다.얼굴 빨개진 나는 은근히 쪽지를 보이며 "얼른 나가야겠네요." 하며, 그녀에게 약간의 압박을 가했다.

재빨리 옷을 줒어입고 난 차를 빼러 나갔고 싸비는 그녀를 문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녀가 하도 나오질 않길래 옷을 찾나 싶어 문을 열고 옷 여기있다고 말하려는데 막 계산을 끝낸 그녀가 난데없이 싸비에게 "아니, 계산도 안하고 어딜가는 거야, 자기넨 아파트도 있고 차도 있으면서... 또 카드도 있잖아." 순간 하도 기가 막혀 화가 치솟았지만 지금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아프다는 걸 느낌으로 알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싸비는 "아, 네 미안해요. 잘 몰랐어요."

그녀는 자기가 낸돈을 주인에게 돌려받고 싸비는 현금이 모자라 카드를 내밀었단다. 마음이 안좋았지만 이럴수 밖에 없었다. 오, 조울증! 혹 정신분열까지?...

나오자마자 그냥 데려다 주고 가려고 했는데 그녀는 금방 있었던 일을 벌써 다 잊은듯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정말 미치겠는데 이 상황에 어떻게 노랠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그래도 입도 뻥긋 못하고 우린 따라갔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야.


     노래방에 가다

역시나 그녀는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혼 후에 술, 담배를 다시하게 된 그녀는 노래방 주인에게 보라색 라이타를 주문한다. 꼭 보라색이어야 한다고...  당황한 주인 여자는 난처해하면서 겨우 보라색라이터를 찾아 주지만 그건 보라색이 아니라며, 다시 보라색라이터를 사오라고 한다.

어쨌든 노래방에서 잘 놀아줘야겠다고 우린 애써 마음을 먹고 노래를 하지만 그녀는 계속 들락거리며 음료수를 맘대로 집어온다. 그리고 혼자만 노래를 하고 즐거운 듯 평범하지만 특이한 느낌의 춤을 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노래방에서 나오며 싸비는 주인 여자에게 물었다. "음료수 또 가져간 거 계산하셨나요?" 역시나 하지 않았고... 물론 노래방 비용도 우리가 냈다. - 우린 조울증에 대해 좀 이미 아는게 있었다.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이 날로 두 번째가 된다. 과소비란 항목이 떠올랐다. 들은바에 의하면, 신용카드를 남발하고 경제적 비용을 식구들은 당해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녀의 미용실로 가면서 화는 이미 사라져가고 우린 각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그녀는 헤어질 때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매우 미안한 느낌으로 다정한 인사말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너무나 큰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아까한 말과 행동으로 우릴 다시 못 볼까봐 두려워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무척 긴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집에 돌아와 한 일주일간 이 일로 시달림을 받았다. 이렇게 병이 깊은줄 몰랐고 또 어떻게 대처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그렇게 인사하고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그녀를 다시 볼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고...

사실 내 머리와 싸비의 퍼머머리는 여태까지 그녀가 최고였다. 전화를 해보는 것도 두려웠다. 당신이 어제 어땠는지 얘기할 수도 없고 그냥 괞찮냐고 전화하기도 이상하고... 아뭏든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머리 하러 가야 하는데... 가야지 하며.



     다시 머리 깎으러 가다 

미루다 미루다 도저히 볼 수 없을 때까지 참다가 드디어 우리는 그녀에게 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가 좋아하는 우리 빠다를 차에 태웠다. 거기까지 대략 40분이 걸려, 우리는 차에서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혹 이사가지는 않았을까? 동네에서 크게 강아지 엄마와 싸운 일도 있고, 그때 그녀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니... 그리고 우리와의 일도 있고... 아니면 문은 열었을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미용실 전화번호는 알았지만 우린 서로 전화해보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 이후로 좀 어색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막상 도착했을때 문은 꾸욱 잠겨있었다. 멈짓거리다 옆집 수퍼아저씨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 어느 병원인지는 모른다며... 물론 병명도 모르고... 아는 동생이 어느 날인가 와서 입원시켰다고... 한 20일정도 되었다고... 난 속으로 드디어 정신병원에 갔구나. 그랬구나. 그 뒤에 아마도 더 큰 일들이 있었나보다.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다시 여기 왔을때 그녀가 여기 있을까?

'가위와 바리깡을 사야할까? 이젠 당신이 내 머릴 깎아줘야 할 것 같아. 이 나이에 사진 내밀면서... 이렇게 깎아주세요. 말하는 것도 좀 웃길 거 같고" 그래도 깎을 수 있고 깎아만 준다면 처음만 그럴테니 망신도 감수하겠는데 말이다. 싸비는 '내 머리는 어쩌지?  다른데 보다 스타일도 잘 나오고 머리도 안상하게 하고 다른데서 하면 2달 밖에 안가는데 그녀는 6개월이상 가게 해줬는데, 그리고 ...'

어쨌든 일단 동네에서 깎아보기로 하고 두 군데를 기웃데다가 그나마 센스있어 보이는데로 들어갔다. 너무 쑥스러웠지만 사진을 보이고 이렇게 좀 깎아주길 말해 보는데, 그 미용실 여자는 신통치 않은 표정을 보이며 앉으라고 한다. 그런 주인 여자에게 난 "사진을 앞에 놓을까요? 집어 넣을까요?"라고 용기내어 말해 보는데... 쯪쯪, 한마디로 내가 봐도 이 상황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정말 부끄러웠다.

날 잘아는 싸비는 뒤에 앉아서 어쩌지 못하는 미소를 흘리고... 그녀는 조화를 보기는 커녕 머리를 뜯어 놓는다고 해야할 지경. 그 엉성한 손 놀림에 숱가위는 처음 다뤄 보는듯한 솜씨... 정말 절망적이다. 갑자기 그 모든 손해(특히 차 문짝)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 괜찮네요." 하며 내키지 않은 미소를 띄우며 그 곳을 나왔다. 그러면서 싸비에게 "그 조수가 해주던 머리마사지 그거 아주 좋던데..." 그러면서 우린 서로 막 웃었다. 유쾌하게... 그리고 싸비가 하는 말 "바리깡, 그거 사, 다음엔 내가 해 줄께!" 

그녀가 그토록 정성스럽게 내 머리와 싸비의 머리를 다루어 주었었는데... 새삼 다른 이의 손질을 겪어보니 그녀의 소중함과 특별한 재능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나온다. 나 말고도 나처럼 학생때부터 20년이 넘게 찾아오는 단골이 더 있다는 그녀, 이런 능력을 가진 그녀, 그리고 마음에 병이 있고, 가난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그녀,  빨리 다시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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