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days

상상마당극장

sav.. 2008. 8. 21. 11:27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전에서 작은집 조카가 혼자서 서울 나들이를 왔다. 이제 고2가 되었는데 처음 내가 보았을 땐 3살짜리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던 아주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 였는데 지금은 제법 청년같은 모습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빠의 얼굴이 더 많이 묻어난다. 기특하게도 학년이 올라갈 수록 성적이 좋아진다고 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무척 말수가 적었다. 방학이라 모처럼 서울에 온다니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이 많아졌다.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멀지 않은 시일내에 어쩌면 서울로 유학을 올지도 모르는 조카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되어야할텐데...

마침 지난번에 같이 일했던 예쁘고 마음 좋은 J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지난번 그녀는 홍대앞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꼭 한번 놀러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전화를 했는데 그녀의 전화기는 잠을 자고 있었으니 난감하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음성을 남겨두고 잠시 쉬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척 반가운 음성으로,
"실장님, 잘지내셨어요?"
부산 사투리 억양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자신은 사투리 티가 나지 않는다고 늘 큰소리를 치지만 남들은 다 알아보는... ㅎㅎ~~
"J씨 어디야? 잘지내?"
"네, 실장님은요?"
"잘 지내지, 오늘 거기로 가려구. 대전에서 조카가 왔는데 홍대앞 구경시켜주면 어떨까하구"
"어디 볼만한 공연이나 연주하는데 있어?"
"네, 제가 알아볼께요"
"그럼 몇시에 퇴근해? 시간 맞춰 그리로 갈께"
"네"
"참 거기가 어디쯤이야?"
그녀는 자세히 일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조카는 고2학년, 저녁을 살테니 먹고 싶은 것도 생각해 놔..) 시간에 맞춰 그곳을 찾아나섰는데 생각보다 길이 만만치 않았다. 워낙 많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번의 통화 끝에 그녀가 일하는 물고_라는 까페에 도착하니 그녀가 우리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난 것 같은데 그녀는 일을 마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먼저 차 한잔 하시라고... 들어가 커피와 주스를 시켜 마시고 그녀가 일을 마칠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는 공연 스케줄표와 단편영화 상영안내표를 내밀었다. 어떤 것이 좋을지 모두들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서로의 눈만 바라보고 있을때, 안되겠는지 그녀가 우선 저녁부터 먹자고 했고 우린 그녀가 추천한 수제 햄버거 집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가 아주 예쁘고 아담해서 마음에 들었다. 계단입구에 들어서자 젊고 예쁜 아가씨가 옷을 팔고 있었는데 왠지 옷이 다 이뻐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실내분위기도 괜찮았고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녀는 주인장과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메뉴판이 나왔는데... 왓! 햄버거 하나에 가장 저렴한 것이 8000원대... 그리고 10000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조그만게 아닌 무지하게 커다란 햄버거가 나왔다. 맛은 그런데로 먹을만 하였는데 맛에 비해 가격이 좀 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좋은 사람들과 먹었으니.. 됐지 뭐~ 그리고 함께 서비스로 나온 치킨 샐러드가 맛이 좋잖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상마당이라는 극장으로 출발했는데 그만 주차 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 자리를 '뱅글뱅글' 돌게 되었고...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나서야 차를 댈 수 있었다. '아휴, 담엔 차 놓고 와야겠다.' 결심하며 조금을 더 걸어가니 상상마당이 있었다.

창구의 안내서를 읽어보니 요일마다 공연 내용이 달랐고 더구나 그날은 어쩐지 딱히 볼게없는 것처럼 느껴져 서로 선택하기를 주저하다가 오늘의 주인공 조카에게 선택하도록 했다. 그는 정말 간신히 신인밴드와 단편영화 중에 단편영화를 선택했다. 시간이 남아서 건물 안에 있는 선물가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다보니 어느새 영화상영시간이 다 되었다.

처음 상영작은 '달'이었는데 보다가 슬슬 화가나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도 다 이런 수준이라면 어쩌지' 스토리도 없고 표현도 부족하고 연기자의 연기력은 더더욱 안되고 3박자가 너무 잘 맞아 영화보러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작품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중 '봉천동 스토리'는 내용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 '창조기'는 애니메이션이 좋았고 내용적인 면에서 좀 유치해서 그렇지 그래도 봐줄만했다. 그리고 '자판기소녀의 사랑'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분명하지 않아서 좀 그랬고, 따로 또 같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지막 '지옥행'을 보고 모든 것을 용서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스피드하게 전개된 상상스토리와 음악,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3박자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게다가 마무리까지 나무랄데 없었다. 마치 어린시절 꿈에서 경험해 봄직한 것을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브는 자기 어린시절의 괴롭게 시달렸던 꿈과 너무 비슷하다고 했다.

영화관에서 나와 그녀의 음악 작업실로 향했다. 홍대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했고 그룹에서 드럼을 담당하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그녀는 월급을 타면 방값으로 일부 떼어놓고 나머지로 빠듯한 생활을 하며 틈틈이 쪼갠 시간을 통해 음악작업을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드럼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드럼을 빌려서 연습을 하고 있다는... 언젠가 돈을 모아서 꼭 자기만의 드럼을 장만할거라고 했었었는데 오늘 그녀의 작업실에 가보니 자기 드럼이라며 방음벽 가운데 스스로 뽐내는듯 빛나는 드럼을 보여주었다. 보고 있자니 정말 흐뭇해졌다. 둥둥 쳐보고도 싶고 또 그녀의 연주도 무척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너무 깊은 밤이라서 주변사람들이 드럼소리에 놀라 자다 깨는 일이 생길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화제를 전환해 전에 활동했다던 문학모임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또 사람들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조카를 옆에 앉혀두고 우리끼리 오랜만의 수다를 떨었다. 글쎄... 먼훗날 조카에게는 오늘이 어떤 의미로 자리잡을지...


...싸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오는 날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위에서 평창동 방향을 바라보며...



'Lovely d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배동 거리, 비가 온다  (4) 2008.09.11
바람  (0) 2008.09.02
이십대의 얼굴  (6) 2008.08.28
세월  (0) 2008.08.26
7층 꼬마가 들려주는 노래  (0) 2008.08.23
참 이쁜 운동화  (0) 2008.08.21
리미트 사랑  (0) 2008.08.10
마더메리~  (2) 2008.08.09
꿈꾸는 일상  (2) 2008.08.05
Mirror  (0) 2008.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