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싸비와 동생들 여럿과 함께 치악산에 캠핑을 간적이 있었다. 그 중에 K는 자기가 라면을 아주 맛있게 잘 끊이는 법을 안다면서 우리들에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방금 떠온 찬물에다가 처음부터 면을 넣고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과연 맛이... 나는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뭐 특별한 방법을 안다니... 은근히 기대했다. 곧이어 텐트안에서 라면이 다 익었다는 소리에 모두들 달려나왔다.
한 젓가락 맛을 보았을 때...우욱..너무나 불어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두들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후루룩 후루룩~".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만 이런생각이 들었다. '여태 먹은 라면 중에 이 정도로 불은 라면은 정말 처음이야,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들 먹고 있는거지?'
라면을 먹고있는 그들의 표정은 농담이라도 불었다는 농담이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이상하리만치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더이상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을 정도로 라면이 불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체, 이 불은 라면을 어떻게 저런 표정으로 먹을 수 있는거지?" 난 그들이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억지로 먹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정말 나만 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야 아니야 분명 모두가 성의를 생각해서 참고 맛있게 먹어주는 거겠지. 이그 착한 것들..
갑자기 나는 '맛있게 해준다더니 이게 뭐야? 너 어디가서 라면 끓이겠다고 그런 말 하지마. 안되겠다야. 그래도 이 맘씨 좋은 형이 오늘은 맛있게 먹어줄께'라고 우스개처럼 말해볼까. 모두가 일제히 맛있게 먹고 있으니 갑자기 더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나는 다 먹고나서 말을 하게 되었다. 농담조로 목소리를 약간 올린채 웃으면서 "야, 니들 어쩌면.. K가 끓였다고.. 라면 불었다는 말, 아무도 말 안하던데..." 그러면서 그들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두들 내 말에 웃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친구사이에서도 이런 말쯤은 쉽게 하지않던가. 그런데... 그들의 반응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들의 감각에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내가 불었다고 느낀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일제히 "라면이 불었다구요? 전혀 안 불었는데.. 난 너무 맛있는 걸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어서 하나하나 일일이 묻기 시작했다. "너두?" "너두, 정말?" 그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네. 정말 맛있었어요!" 하나같이... 그랬다. 예상을 빗나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은 먹고 싶지않은 것을 참고 먹은 것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먹은 것이었다.
난 적어도 이런 대답이 나올줄 알았었다. "그래도 모처럼 K가 성의껏 끓인건데... 좀 불었어도 맛있게 먹어줘야죠. 이것 땜에 괜히 기죽으면 어떡해요." 라고 그런데 오히려 조금도 불지 않았다는 듯이 대답을 하다니.... 그들의 감각에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내가 불었다고 느낀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 였다.
나에겐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뒤에 말하겠지만 이것은 성격유형이론으로 충분히 해석된다. 어쨌든 이 상황이 하도 재미있어서 그들과 같은 유형타입인 싸비에게 나는 많은 질문을 해대었다. "정말 불지않았어?" 부터 "어떻게 불었다는 걸 모를 수 있는지." 까지...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그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그러다 난 놀라운 말을 듣게 되었다.
싸비는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처음엔 불지않았다고 말했으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그녀는 그 때의 느낌이 아니라 사실(T)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K가 면을 처음부터 찬물에 넣고 끓인 시간이나, 먹기시작할 때 눈으로 본 면의 느낌으로는 분명히 불은게 맞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입에서는 불은 것을 전혀 알 수 없을만큼 맛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는 그 라면이 객관적인 사실로는 불었다해도 불지않은 라면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불었다고 느끼지 않았으니까. 원래 싸비는 다른건 다 관대면서도 라면 불은 것만은 못참는다. 눈물이 나올 정도다. 그런 사람이 그 라면이 맛있었다고 말하는거다. 지금.
그들은 라면이 불은 '사실'보다 라면을 끊이는 사람의 정성 때문에, 불었다는 사실이 사실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즉 그들에게 불은 라면은 '관계'나 혹은 '과정'에 따라 불지않은 라면인 것이다.
나(T)를 뺀 그들은 모두 심리유형론으로 볼 때 F였고, 또 그 중에서도 더 세밀하게는 관계에 대한 의미를 매우 중요시 하는 NF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같은 유형이라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이다니...
맛있게 먹은 사람들은 모두 NF였다. 심리유형적으로 볼 때 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속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대다수는 여기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때려잡는 건데... 만약에 이야기를 읽고 이 글의 핵심을 빨리 알아들었다면 NT일 확률이 높고 게다가 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할 정도면 당신은 진짜 NT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NT도 NF만큼 소수이다.
만약, 당신이 NF라면 저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것이고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저런 반응을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것에 놀라며, 자신이 그동안 세상에서 외롭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세상의 일들을 해석하는데는 여러가지 이론으로 가능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성격이라는 생각도 한다. 과정을 중요시하거나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선택은 우리들의 모든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두 개의 길은 없다. 둘 중의 하나를 골라서 삶을 유지해온 결과의 산물이 바로 성격대로 살아온 오늘의 나인 것이다.
이글은 개인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MBTI에 대해 해석해 놓은 저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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