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편지를 씁니다, 들꽃 여관 당신에게 병렬로 늘어선 열 여섯까지 나는 참으로 가지런 하였습니다.
착한 사다리같이 고른 간격을 지어 나가며 다음 칸을 오를 때, 기대는 이스트처럼 부풀어 구름다릴 놓아야 했지요.
열 여섯에서 발을 잘 못 떼어 열 여덟, 혹은 열 아홉으로 헛딛지 않았대도 내 생에 당신이란 방 한 칸
들어설 수 있었을까요?
이따금 生이 백열전구처럼 붉어져 올 때마다 나는 들꽃 이불이 그리워 알몸으로 기차에 오르곤 했습니다.
들꽃여관 당신을 만나면 곧바로 잡어떼가 밀려들어 내 다리에 알을 슬어 놓는다거나 낙타의 목에 무등을 타고
끝없이 너를 모래바다를 걷는 꿈에 빠져 들고는 했거든요.
내 목적지는 언제나 '희망'
날 갖기엔 애초부터 당신은 너무 낡아 있었어요.
가만 우리가 언제 만난적이 있던가요?
난 늘 이곳에 올 때마다 다른 이름이었는데,
형식적인 숙박부는 연하장에 박힌 '근하신년'이나 '송구영신' 만큼 진부하고도 어색하죠.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의 주소와 이름이 매번 달랐던 것도 바로 들꽃여관 때문이죠.
나는 최대한 내 스스로와 거리가 먼 타인이어야 했고 문패도 번지수도 없어야만 속엣말을 단 한 줄이나마
적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오이런! 내 편지를 한 통도 받지 못하셨다구요. 그건,,, 편지지가 바로 당신의 넓다란 등짝이었으니까요.
십 년도 훨씬 넘은 세월 동안 한결같이 촌스러운 들꽃무늬를 두르고 있는 당신,
이젠 색이 바래 사방 연속무늬로 이어지던 꽃의 줄기마저 사라지기도한 낡은 벽지에 깨알처럼 총총 부려놓은
내 얘기들을 꼭 그시간 만큼 떼매고 있었단걸 몰랐나 보군요.
하긴 한번도 읽어드린 적이 없었으니까요. 우린 늘 이런 식이예요.
한 쪽이 유순하려면 다른 한 쪽이 등을 보이죠.
낮선 여행지에서 만난 창문 삐걱이는 여인숙처럼 우린 늘 남루한 외지인의 모습으로 서로를 겉돌아야 했나봐요.
그때 열 여섯에서 멈춰진 가슴으로는 당신이 말씀하시던'사랑'이란 언어가 화성인의 웅얼거림 쯤으로 들리던 걸요.
속으로 멍든 연필심처럼 깍아도 깍아도 부러지는 나를 보시곤 당신은 백지같은 절망만 느끼셔야 했었나요?
그 만큼 난 아늑하고도 극적이었죠.
들창에 바람이 새어들고 벽지에서 조차 한기가 느껴지는 날엔 어김없이 편지를 씁니다.
들꽃여관 창문 틈 보이는건 헛기침 뿐인 파도이고 정원인양 펼쳐진 백사장은 전당포에 잡혀놓은
회중시계처럼 낡아 있군요.
이것봐요! 부서지기 위해 사는 생이 아니라구요.
네모진 창틀에 허릿띠를 매고파도 당신은 너무 주름져 있어요.
열 여섯에 삐걱여 허방을 딛는 동안 줄곧 균열을 키워온 당신!
금이 간 등짝에 신신파스처럼 도배된 내 편지들도 이젠 제발 떼어 버리세요.
그리고 앞으론 기억을 눕히려 찾아드는 사람 말고 정말 잘 곳이 없는 사람에게만 당신을 여세요.
설령 싸구려 사랑들에게 린치를 당해도 당신은 두 눈 꾸욱 감고 참으셔야 하죠.
다들 나처럼 가만히 찾아와 편지 한장 붙여주고 나가는건 아니니까요. 그게 지상의 단 한 칸짜리 당신 운명이에요.
이젠 건너 뛴 몇 개의 내 계단을 찾으러 가야겠어요.
유년도 성년도 아닌 열 여섯으로 혹은 잘못 건너뛴 기우뚱한 나로 더는 살 수가 없으니까요.
정말 이 편지가 마지막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잊겠어요, 꽃무늬 셔츠 당신을요!
기우뚱한 사다리에 벽돌 몇장 얹어준 그대를,,, 내 일기이고 내 유서인 그대를,,,
초야를 함께 치루고 죽음을 맞붙들고 가려했던 그대를,,,
안녕 들꽃여관!
......................................................................................................
아 참! 팥죽색 커튼 뒤에 언제인가 써 놓은 '죽.고.싶.다'란 혈서요,
斷指한게 아니라 실은 생리혈이었어요. 그리고 영업 허가증을 넣어놓은
액자속엔 해마다 엄마가 해주신 액막이 부적이 들었구요,
그 낡고 허름한 창에 가끔씩 날아들던 새한테 줬던건,,,,
손가락에서 떼어낸 내 살점이었어요.
白沙場의 모래알갱이만큼 아니, 섣달 회오리만큼, 날 容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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