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er

나의 수호천사... 산그늘

sav.. 2005. 7. 4. 04:08


어려운시기를 보내고 나는 복학을 하기로 했다.
학교에 돌아왔을때 제일 먼저 나에게 건낸 말.

"선배... 기다렸어요. 00학번 선배들이 선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곧 괜찮은 선배가 돌아온다고..."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와의 인연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서울 여자의 하얗고 세련된 귀티나는 얼굴이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귀여워 하면서도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잘 모르는 듯했고...
그녀는 곧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느새 우리는
서로의 온갖 비밀을 다 알게 되었고 또 편안히 나누었다.
그녀는 나에게 조용하고 아름답게 말하며
꼭 끝에는 "선배, 이건 꼭 비밀이야!" 했고
나는 "알았어. 자물쇠로 꼭 잠궈둘게." 했다.





자취를 했던 나는 이리저리 빈번히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그녀는 나를 항상 챙겨 주러 오곤 했다.
당시 석유풍로로 냄비밥을 해먹을 때 였는데
그날따라 자기가 밥을 해 주겠다고 명랑한 제스쳐를 보였다.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 자란 그녀는
생전 처음보는 이 물건을 어찌 다뤄야 될지 몰랐는지
수없이 내게 묻느라고 바빴다.
나는 "이그~ 관둬!"하며 "내가 할께. 들어가 있어."

주 특기인 나만의 김치찌게를 해서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난 후
그녀는 설겆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나는 온 몸이 간지러워 긁다가
그것이 두드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히는게 있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는데
아뿔사.... 그녀는 요강닦는 수세미로 그릇들을 닦았던 것이었다.!!!!
'으이그, 내가 못살아, 그때 내가 나가 봤어야 했었는데...'

이전에 살던 집(임시로 6개월 동안)은 화장실은 있었으나
물이 안나오는 때가 많았던 이유로 요강을 쓰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혹시 몰라서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새로 이사온 이 집 화장실마저
 얼마전 바로 윗집 차가 문을 들이 받아 망가져 버리는 바람에
주인이 문대신 거적을 임시로 달아두었기에...
바람불면 갑자기 펄렁!... 윽... 화들짝! ㅋㅋ~~
어쨌든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 생각에 서로 마주보고
 무척 웃어댔고...
이젠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외적으로는 아무도 모를만큼 밝게 지냈지만
내적으로는 무척 우울한 시기였다.
하루에도 여러 그룹의 친구들이 찾아오곤 했었는데
그들이 모두 가고난 후
그녀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또 힘든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반복하기도 했다. 아주 많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ㅎㅎ

그녀는 지금도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며
내가 걱정하면 그것은 어느새 그녀의 근심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의문이지만...





졸업 후 '이젠 좋은 집에 살거야.' 하며 여기저기 다니다
이번엔 언덕 꼭대기로 갔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되었는지, 2층이고 깨끗했다.
그 해 나는 사랑에 빠졌다.
빌라로 이사하고 나서 흰 눈이 살을 에이듯이 오는날,
...()...의 반대로 힘겨운 상태에 있었다.

그녀가 막 내게 왔을때
밥도 못먹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것 같은데
사실 난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코를 잡고 "이게 무슨 냄새야?"
막 내동댕이 쳐진 생선들이 썩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전에 싸비와 함께 사온 생선들...
문득 며칠전 일이 스쳐갔다.
그들이 엉망으로 만들고 내게서 싸비를 빼앗아 간...

나는 그때 사실 그 어떤 냄새도 느끼지 못했었고
그녀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말했는데도
 끝내 그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





주섬주섬 그걸 다 치우고 아래층에서 쌀을 꿔다가
 내게 밥을 해서 내미는 그녀...
그 때 난 사랑에 빠져서 그녀를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싸비의 전화를 받고 눈보라를 헤치며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았다.
당시 나는 얼마나 미쳐있었는지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버스가 오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택시에 올라 있었고 뒤로 얼핏 보이는 그녀의 모습.
순간... 마음이 아파왔다.

이 추운날, 아침 일찍부터 눈보라를 헤치며 꼭대기까지
내 걱정으로 온 그녀인데...





그 때 나는 그녀를 처음으로 보았다. 진정한 그녀를...
진심으로 날 아끼고 위해 준다는 걸...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않고 그저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그녀.
내가 항상 잘 되기만을,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만를 원하는 그녀.
그녀가 없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 시간의 나를 지탱해준 소중한 사람.

지금 그녀는 그녀와 마음이 꼭 닮은 딸을 가진
한 아이의 엄마이고, 잘 생긴 한 남자의 아내다.
나와 싸비를 아직도 사랑해주고
그리곤 이제 싸비와 더 친하다. ㅎㅎ~~

내게 사랑을 듬뿍 준 나의 수호천사.
그녀에게 날마다 축복이 쏟아지길 바라면서... sav 




'Dream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그리운 것  (0) 2008.07.19
나의 어머니  (10) 2008.07.16
한 순간에 반하기  (10) 2008.07.05
구원(salvation)  (4) 2008.06.28
존재  (8) 2005.07.06
마음의 그림자, Complex  (9) 2005.07.01
비와 눈물  (6) 2005.06.27
내 안의 나  (10) 2005.06.15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27) 2005.06.08
나의 그림이 된 뱀  (14) 2005.06.06